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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성 시리즈, 잉그리드 베탕쿠르

by 웰싱커 2023. 4. 2.

세상의 강한 여성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 그 첫번째는 잉그리드 베탕쿠르 입니다. 

 

잉그리드 베탕쿠르

 

잉그리드 베탕쿠르

 

 

 

잉그리드 베탕쿠르 풀레시오( 1961년 12월 25일 생 )는 콜롬비아의 여성 정치인으로, 콜롬비아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프랑스계 아버지와 콜롬비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콜롬비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인 욜란다 풀레시오는 빈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사회 운동가이자 콜롬비아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파리 정치 대학교를 졸업 후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하고, 두 자녀를 낳고 외교관의 부인으로 뉴질랜드세이셸에콰도르 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약, 자연재해, 각종 부패에 시달리는 조국 콜롬비아의 현실에  문제를 느끼며, 콜롬비아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1989년 에는 마약 밀매 반대 강령을 내세운 콜롬비아 대통령 후보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이 암살됐을 때, 베탕쿠르의 어머니는 갈란의 지지자였고 갈란이 총에 맞아 죽었을 때 바로 뒤에 서 있었습니다.이 사건으로  베탕쿠르는 1989년 남편과 이혼하고 콜롬비아로 돌아갔습니다.)

 

콜롬비아로 돌아온 이후

1990년 부터 콜롬비아 재무부에서 근무했으나,  행정부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는 콜롬비아의 부패를 척결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정계 진출을 시도하여 1994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습니다. 하원의원 재직 중, 에르네스토 삼페르 대통령의 마피아 선거자금 수뢰 사실을 밝혀내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살해 협박을 받았고, 콜롬비아로 데려왔던 두 자녀는 프랑스로 피신시켜야 했습니다.1998년에는 녹색산소당을 창당하고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습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는 결국 안드레사 파스트라나가 승리했다.파스트라나는 베탕쿠르에게 그를 지지하도록 설득했고, 그녀는 그의 대통령 임기 동안 채택될 부패방지 선거 개혁에 대한 합의 하에 그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선거 개혁은 전통적인 정당들의 강한 압박과 정부의 약속 부족으로 무산되었고, 베탕쿠르는 정부의 지지를 철회하고 야당 세력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마약 카르텔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녀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녹색산소당 후보로 출마하였습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반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들어가 선거운동을 하다, 그 해 2월, 부통령 후보 클라라 로하스와 함께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세력에 납치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알바로 우리베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나서 그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습니다. 결국 6년 여에 걸친 억류생활 끝에 2008년 7월 정부군에 의한 하케 작전으로 전격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구출이후의 삶

 

베탕쿠르는 구출 직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아스투리아스 콩코드 왕세자상을 받았습니다. 구출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대신 프랑스에 주로 머물던 그는 2022년 콜롬비아로 돌아와 대선을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베탕쿠르는 "내 이야기는 모든 콜롬비아인의 이야기"라며 "나와 동료들의 목에 사슬이 감긴 동안 콜롬비아인들은 부패, 폭력, 불평등의 사슬에 갇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잉그리드 베탕쿠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그녀의 "6년 간의 억류생활을 통해 배운 공포와 믿음에 대하여" 라는 테드강연 영상이 있습니다. 

 2001년, 자전적 에세이를 프랑스에서 La rage au cœur라는 이름으로 출간했으며, 이 책은 프랑스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한민국 에서는 2002년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다음 소개 인물 안내

 

다음 강한 여자 포스팅은 케냐의 여성 환경 운동가인 노벨평화상을 받은 왕가리 마타이 입니다. 

왕가리 마타이